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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6일 목요일

[초딩CC] 55년을 함께 달린 기적 같은 순애보

 



초인종 소리처럼 찾아온 55년의 세월

인생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요?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고향으로 완전히 돌아온 요즘, 제겐 잊지 못할 기적 같은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보물은, 평생을 나란히 걸어온 제 짝꿍이자 영원한 초등학교 동창인 아내와의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55년 만에 참석하게 된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친구들은 우리 부부를 향해 짓궂은 농담을 던졌습니다. "야, 이 자식들아! 그 옛날에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어디로 도망쳐서 연애질만 하더니, 결국 둘이 결혼까지 골인했냐? 이 동네에서 커플로 남은 건 너희들밖에 없다!" 친구들의 놀림 섞인 박수 속에서 우리는 껄껄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백발이성(白髮而聖)의 중년이 된 지금도 우리는 서로를 향해 여보, 당신이라는 호칭 대신 여전히 어린 시절 부르던 이름 석 자를 부르며 티격태격 재미나게 살아갑니다. 그 아스라이 먼 열두 살의 기억 속으로, 우리의 찬란했던 순애보를 펼쳐봅니다.


1장. 과외 방에서 피어난 풋풋한 눈빛: 시골 동네 이웃사촌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유난히 햇살이 뜨겁고 매미 소리가 요란하던 여름이었습니다. 당시 형편상 동네 아이들은 방과 후 골목길을 뛰어놀기 바빴지만, 우리 집은 운 좋게도 동네 작은 공부방 겸 과외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습니다. 매일 오후, 삐걱거리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오던 단발머리 소녀. 같은 동네 이웃에 살았던 그 아이가 바로 제 과외 메이트였습니다. 처음에는 나란히 앉아 국어 책을 읽고 수학 공식을 풀었지만, 문제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곁에 앉은 아이의 맑은 눈망울이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동네 골목길을 함께 걸어 등하교를 하고, 문제가 안 풀리면 서로 머리를 맞대며 킥킥거리던 그 시간들. 공부를 핑계로 대문 밖을 나와 아이스크림 하나를 나눠 먹던 그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속에는 작은 싹이 트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흙먼지 날리는 시골마을이었지만, 그 아이와 함께라면 평범한 하굣길도 시한편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습니다.


2장. 수원 원두막의 별밤, 그리고 냇가의 거꾸로 신은 고무신

방학이 되면 우리의 아지트는 외할머니댁이 있던 수원의 너른 과수원이었습니다. 당시 외할머니댁 과수원은 포도, 배, 복숭아 등 온갖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는 지상낙원 같았습니다. 푹푹 찌는 한낮의 열기를 피해 우리는 과수원 한가운데 높이 솟은 원두막으로 올라갔습니다. 붉게 익은 복숭아와 달콤한 포도를 원없이 따 먹으며 원두막 아래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우리는 원두막 평상에 나란히 누워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던 쏟아질 듯한 별빛 아래서, 서로의 꿈과 비밀을 속삭이며 밤을 지새우곤 했습니다. 비가 갠 어느 날에는 과수원 옆 작은 냇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미끄러운 흙길에 짚신이나 고무신이 벗겨질까 봐, 혹은 물살에 신발을 잃어버릴세라 우리는 고무신을 거꾸로 고쳐 신고 냇가로 뛰어들었습니다. 쪼그려 앉아 맨손으로 피라미와 송사리를 잡겠다고 낄낄거리며 물장구를 쳤고, 옷이 흙탕물에 엉망이 되어도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그 시절의 웃음소리는 지금도 제 귀가에 은은한 풍경소리처럼 남아 있습니다.


3장. 난파합창단의 선율과 팔달산·광교산의 푸른 데이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소년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우리의 인연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던 아이는 지역에서 유명했던 난파합창단에 들어가 고운 목소리로 합창을 이끌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솔로 파트를 맡아 청아하게 울려 퍼지던 그 아이의 목소리는 관중들의 가슴을 울렸고, 객석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습니다.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아이가 내 친구라니, 아니 내 사람이라니' 하는 자랑스러움과 설렘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제 청춘의 감수성은 폭발하듯 자라났습니다. 합창 연습이 끝나거나 주말이 되면 우리는 수원의 명산인 팔달산과 광교산으로 향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향이 감도는 팔달산 성곽길을 나란히 걸으며 학교생활의 고민을 나누었고, 가파른 광교산 자락을 오를 때는 힘들어하는 아이의 손을 꽉 잡고 끌어주었습니다. 화려한 도심의 카페나 영화관은 없었지만,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과 상쾌한 산바람, 그리고 서로의 거친 숨소리와 따뜻한 체온이 그대로 최고의 데이트 코스였습니다.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던 수원 시내의 풍경은 우리 두 사람만의 거대한 영화 세트장 같았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며 나눈 수많은 약속과 눈빛은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우리 사랑의 굳건한 반석이 되었습니다.


4장. 험난한 세파를 넘어, 마침내 부부가 되다

어린 시절의 풋풋한 감정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깊어졌습니다. 각자의 학업과 치열한 삶의 바쁜 일상을 버텨내면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철없는 초딩 시절의 연애가 무슨 결실을 맺겠냐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서로의 성장 과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고, 인생의 가장 가난하고 힘들었던 밑바닥 시절부터 함께 울고 웃으며 단련되었습니다. 결국 오랜 연애 끝에 우리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함께할 약속을 맺었습니다. 식장에 입장하는 순간, 어린 시절 원두막에서 별을 헤던 아이와 팔달산 산길을 나란히 오르던 그 소녀가 제 신부가 되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저는 하마터면 참았던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세월은 우리 얼굴에 주름을 새겨놓았지만, 마음속에 품은 순수한 열정만큼은 단 하루도 식은 적이 없었습니다.


에필로그: 55년 만의 동창회, 그리고 끝나지 않은 우리의 청춘

최근 열린 동창회 자리는 그 시절의 추억을 완벽하게 소환해 주는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5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 중년의 여인이 되어 만난 자리에서 친구들은 우리 부부를 가리키며 농담을 던졌다. "쟤네 둘은 정말 못 말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주 독하게 연애만 하더니, 아직도 눈빛이 달달하네!" 친구들의 짓궂은 놀림에 우리는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그렇다. 우리는 반세기 가깝게 서로를 알았고, 평생을 함께 살아오면서도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여보'나 '당신'이라는 딱딱한 호칭을 써본 적이 없다. 여전히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장난을 치고, 아침마다 티격태격하다가도 맛있는 반찬을 먼저 집어주는 천진난만한 소꿉친구로 살아가고 있다. 수원 원두막의 복숭아 향기와, 팔달산 자락에 울려 퍼지던 난파합창단의 선율, 그리고 냇가에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벙글거리던 그 시절의 순수한 미소가 아직도 우리 가슴속에 살아 숨 쉬기 때문이다. 인생의 후반전이라는 길목에서, 어린 시절의 짝꿍이자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걷고 있는 이 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풍경이다. 우리의 청춘은 여전히 그날의 원두막 별밤 아래서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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