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황해를 건너던 배 위에서 만난 작은 거인
인천항을 떠나 중국 단동으로 향하는 낡은 페리호 갑판. 바닷바람이 뺨을 거칠게 때리던 그날 오후, 나는 난간에 기대어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내 시야에 들어온 한 외국인이 있었다. 덩치가 남산만 한 서양인들이 흔히 연상되는 이방인들과는 달리, 그는 나보다도 키가 작고 아담한, 그야말로 아담스 사이즈의 백인 남성이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백발에 호기심 어린 눈망울, 그리고 낡은 배낭 하나가 전부인 그와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쳤다.
"중국은 처음이요?" "네, 인생 처음입니다. 단동에 내려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낯선 대륙을 코앞에 두고도 두려움보다는 어린아이 같은 기대감으로 반짝이던 그의 이름은 피터(Peter)였다. 미국에서 평생 컴퓨터 전문가로 치열하게 일하다가 은퇴한 뒤, 가방 하나 메고 전 세계를 유랑 중이라는 노신사였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묘한 끌림이 있었다. 체구는 작았지만 눈빛엔 연륜과 자유가 가득했다.
중국 땅을 밟아본 적도 없고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그가 막막해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쓰라리면서도 정겹게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 불쑥 제안을 건넸다.
"저도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혼자 막막하게 헤매지 말고, 일단 제 집으로 가시죠. 거기서 밥이라도 한 끼 같이 먹읍시다."
피터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매일 하던 일상처럼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 정말요? 고맙습니다! 당신을 믿고 따라가죠."
그렇게 황해를 가르는 배 위에서 시작된 즉흥적인 동행은, 내 평생 가장 황홀하고 유쾌한 대륙 버라이어티의 서막이었다.
내 집으로 들어온 미국 할아버지: 컴퓨터 고수와의 동거
내 거처에 도착한 피터는 짐을 풀자마자 특유의 친화력으로 집안을 접수했다. 미국에서 수십 년간 IT 업계를 주름잡던 컴퓨터 전문가답게, 우리 집의 낡은 가전제품과 컴퓨터는 그의 손이 닿는 순간 마법처럼 새것으로 탈바꿈했다. 와이파이 공유기 설정부터 느려 터진 노트북 포맷까지, 피터는 동네 할아버지가 아니라 은퇴한 제임스 본드 같은 고수였다.
우리의 하루는 소박하지만 즐거웠다. 아침마다 시장에서 사 온 신선한 채소와 고기로 요리를 해 먹고, 오후에는 서툰 중국어와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동네를 산책했다. 작은 체구로 아장아장 걸으며 중국 상인들과 흥정하는 피터의 모습은 늘 웃음을 자아냈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아름다운 겁니다. 내가 인천에서 당신을 만날 줄 알았겠어요?"
맥주 캔을 부딪치며 그가 던지던 말들은 내게도 신선한 자극이었다. 자식도 없이, 평생 결혼이라는 제도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전 세계를 떠돌며 살아가던 피터. 그는 외로워 보이기보다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놀이터를 활보하는 자유로운 영혼 그 자체였다.
심양의 교수님이 되다: 그리고 운명 같은 40대 중국 부인을 만나다
피터와 함께 지내며 나는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열어주고 싶었다. 우연한 기회로 심양사범대 측과 인연이 닿았고, 나는 피터를 영어 및 컴퓨터 관련 특강 교수 자리에 적극 추천했다.
"나보고 대학 교수라니? 이 나이에?"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던 피터였지만, 막상 강의대에 오른 그는 프로페셔널 그 자체였다. 백발의 아담한 미국인 교수가 유머러스한 태도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강의는 대학 내에서 단숨에 명강의로 소문이 났다. 대륙의 대학생들은 그를 진심으로 따랐고, 피터 역시 중국 생활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하지만 진짜 기적은 그다음이었다. 환갑을 코앞에 둔, 아니 정확히 나이 육십을 훌쩍 넘긴 그에게 인생 최대의 태풍이 몰아쳤다. 심양의 한 사교 모임에서 만난 40대 후반의 당차고 매력적인 중국인 부인에게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상대 여성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능력 있는 재력가이자,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40대 중반의 부인이었다. 나이 차이가 스무 살이 넘고, 국적과 문화가 달랐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뜨거웠다. 피터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가정을 꾸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내게 진지한 얼굴로 고백했다.
"나... 결혼하려고 합니다. 이 여자가 내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이에요."
결국 두 사람은 주변의 놀라움과 축복 속에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몇 년 뒤, 환갑의 나이에 아들 헨리(Henry)까지 낳았다.
기저귀를 갈고, 서툰 중국어로 아들 이름을 부르며 쩔쩔매는 60대의 초보 아빠 피터의 모습은 상상조차 못 한 광경이었다. 평생 아이도 없이 바람처럼 떠돌던 그가 앙증맞은 핏줄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던 결혼식장 뒷모습은 아직도 내 생생한 기억 속에 박혀 있다.
오 년의 세월, 그리고 그를 향한 아득한 그리움
피터와 함께 심양과 단동을 오가며 웃고 울었던 그 5년여의 세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색다른 동화 같은 시간이었다. 바다 위에서 키 작은 이방인으로 만났던 그가, 대륙의 대학 교수이자 한 가정의 가장, 그리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거대한 영화를 관람하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각자의 삶의 궤도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우리는 잠시 거리를 두게 되었고, 바쁜 일상에 쫓겨 연락이 뜸해졌다. 문득 문득 창밖으로 찬 바람이 불어오거나, 길을 걷다 우연히 외국인의 작은 체구를 보게 될 때면 그 시절의 피터가 떠오른다.
"지금쯤 심양의 그 넓은 아파트에서 훌쩍 자란 헨리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환갑에 얻은 아들은 벌써 훌쩍 컸을 텐데, 여전히 그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으려나."
단동페리에서 우연히 만나 대륙의 운명을 개척해 버린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내 친구 피터. 통장 잔고나 사회적 정답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심장이 이끄는 대로 인생을 재부팅했던 그 작은 거인의 요즘이, 오늘도 왠지 모르게 눈물 나게 궁금하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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