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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1일 토요일

사우디 젯다의 추억: 열사의 모래바람 속에 새긴 타이어 수출 전선기

 


1. 서론: 샐러리맨의 로망, 중동의 모래바람 속으로

1980년대 후반, 종합상사 해외영업팀의 샐러리맨에게 중동은 기회의 땅이자 미지의 전장이었다. 오일쇼크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전히 거대한 건설 붐과 함께 엄청난 물자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당시 나의 주력 품목은 자동차 타이어였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메이드 인 코리아' 타이어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그 치열한 수출 전선의 최전방, 사우디 서부의 항구 도시 젯다(Jeddah)로 향하던 날의 설렘과 긴장은 아직도 생생하다.

홍해의 푸른 바다와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낯선 이슬람 문화의 엄격함. 젯다는 내게 단순한 출장지가 아니라, 청춘의 열정을 불태운 거대한 용광로였다.


2. 본론 (1): 젯다 사무실 창밖의 섬뜩한 풍경

낯선 땅의 첫인상, 초프 스퀘어(Chop Square)

젯다에 도착한 첫날, 현지 에이전트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시내 중심가의 사무실은 제법 현대적이었다. 짐을 풀고 창밖으로 펼쳐진 젯다의 시가지를 내려다보던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사무실 건물 바로 맞은편, 차량 통행이 빈번한 로터리 한가운데에 묘하게 비어 있는 공터가 있었다. 에이전트에게 저곳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초프 스퀘어(Chop Square), 금요 예배 후에 공개 처형이 집행되는 곳"이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뇌리를 스치던 이국적인 풍경의 환상은 산산조각 났다. 살인이나 마약 밀매 등 중범죄자에 대해 샤리아 율법에 따라 엄격한 공개 참수형이 행해지는 곳.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 잡은 그 죽음의 공간은 이방인인 내게 사우디라는 나라의 엄격함과 서늘한 공포를 동시에 각인시켰다.

문화적 충격과 비즈니스의 현실

매주 금요일 오후, 그 광장 주변으로는 인적이 끊기고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사무실 창문을 통해 직접적인 광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처형이 임박한 시간의 묘한 긴장감은 피부로 느껴졌다.

그 섬뜩한 풍경은 내게 비즈니스가 단순히 물건을 파는 행위 그 이상임을 일깨웠다. 그 나라의 법과 질서,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서는 어떤 상거래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창밖의 처형장은 무언의 경고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서늘함을 가슴에 묻고, 더욱 신중하고 겸손한 자세로 타이어 세일즈에 임해야 했다.


3. 본론 (2): 열사의 모래언덕을 달리는 Benz와 사막의 타이어 인스펙션

사막의 포식자, 벤츠 트럭의 위용

젯다 사무실에서의 긴장된 업무를 마치고, 나는 본격적인 시장 개척을 위해 내륙의 사막 지대로 향했다. 당시 사우디의 건설 현장은 한국 건설사들이 주도하고 있었고, 그 거대한 장비와 자재를 실어 나르는 트럭 시장은 치열한 격전지였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미쉐린이나 브리지스톤 같은 글로벌 거인들이었다. 특히 사막의 모래언덕을 가르며 질주하는 거대한 덤프트럭들은 대부분 유럽산, 그중에서도 벤츠(Benz) 트럭이 장악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배기음을 내뿜으며 열사의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벤츠 트럭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그 강력한 기계의 힘을 지탱하는 것은 다름 아닌 타이어였다. 50도를 넘나드는 지열과 날카로운 모래 자갈을 견뎌내야 하는 사막의 타이어는, 생존을 위한 최전방 무기와 같았다.

죽음의 땅, 텅크 타이어(Tunk Tire)를 해부하다

우리가 공급하려는 타이어가 사막의 가혹한 환경을 버틸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나는 현지 대형 운수 업체의 협조를 얻어 사막 한가운데의 정비 캠프로 향했다. 그곳은 문자 그대로 '열사의 땅'이었다. 그늘조차 없는 곳에서 쇳덩어리처럼 달궈진 트럭 타이어들을 점검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현장 엔지니어와 함께 주행을 마친 트럭의 타이어를 탈거해 상태를 확인하는 '텅크(Tunk) 타이어 인스펙션'이 시작되었다. 텅크는 사우디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슬랭(Slang)으로, '터져버린 타이어' 혹은 '펑크 난 타이어'를 의미하는 거친 발음이었다.

지열과 과적으로 인해 타이어 내부 코드가 녹아내린 '세퍼레이션(Separation)' 현상, 날카로운 암석에 베인 '청크 아웃(Chunk-out)' 등 사막의 혹독함에 굴복한 타이어들의 처참한 잔해를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수거된 텅크 타이어들을 절단해 보며 우리 제품의 설계가 무엇이 다른지, 왜 한국 타이어가 이 가혹한 환경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현장 책임자에게 끈질기게 설명했다. 뜨거운 모래먼지를 뒤집어쓰며 한국에서 가져온 데이터를 현장에서 증명해 내는 그 과정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지옥 같았지만 수출 전사로서의 긍지를 느끼게 해준 짜릿한 순간이었다.


4. 결론: 모래바람 속에 핀 수출의 꽃

젯다의 섬뜩한 초프 스퀘어에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과, 사막 한복판에서 벤츠 트럭의 타이어를 검사하며 흘렸던 땀방울은 나의 종합상사 시절을 지탱하는 두 개의 큰 축이었다.

그 혹독한 환경 속에서 나는 강인함과 유연함을 배웠다. 타이어 하나를 팔기 위해 단순히 제품의 스펙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와 환경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굴지의 타이어 생산국이 되었다. 내가 흘린 땀과 젯다의 모래바람이 그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믿는다. 가끔 벤츠 트럭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젯다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검게 그을린 얼굴로 타이어를 껴안고 서 있던 젊은 날의 내가 떠오르곤 한다. 그 열정의 시간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수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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