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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2일 일요일

중랑천의 여름, 그리고 20미터의 공포

 

어릴 적 내게 중랑천은 거대한 놀이터이자 미지의 세계였다. 비가 그친 뒤의 중랑천은 온갖 보물을 품은 바다 같았다. 물 빠진 둑방길에는 은빛 피라미들이 떼 지어 몰려다녔고, 장화신은 발로 물웅덩이를 첨벙거리며 물고기를 쫓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짧았다. 비록 지금의 반듯하게 정비된 콘크리트 하천과는 달리, 그때의 중랑천은 풀이 우거지고 흙냄새가 진동하는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문제는 그날도 어김없이 찾아온 여름비였다. 며칠 전부터 내린 장마 비로 중랑천의 물살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흙탕물이 소용돌이치며 굉음을 냈고, 평소에 건너던 징검다리는 아예 물속에 잠겨 보이지도 않았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앞섰던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함께 불어난 물의 위력을 가볍게 여긴 것이 화근이었다. "여기까지는 안 들어올 걸?" 하며 물가에 발을 담그는 순간, 거대한 자연의 힘은 사정없이 발목을 낚아채 휩쓸어갔다.

균형을 잃고 쓰러진 순간, 세상은 온통 황토색 흙탕물로 뒤덮였다. 숨을 쉴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몸은 붕 떠오른 채 급류에 밀려 속절없이 흘러갔다. 눈앞에는 둥둥 떠내려가는 나뭇가지와 쓰레기들이 스쳐 지나갔고, 귀에는 물소리만이 천지를 진동했다. 얼마나 흘러갔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원하지 않는 야생의 수로를 따라 대략 20여 미터는 하류 쪽으로 떠내려간 뒤였다. 마침 하천 가에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필사적으로 붙잡은 덕분에 겨우 물 밖으로 기어 나올 수 있었다. 폐 속으로 밀려 들어온 흙탕물을 토해내며 바들바들 떨던 그 기억은, 내 생애 가장 강렬하고도 끔찍한 자연과의 조우였다.

집에 돌아온 나를 기다린 것은 따뜻한 위로가 아니었다. 목이 터져라 울며 혼을 내시던 어머니의 매서운 매질과 호통이었다. "거기가 어디라고 비 온 뒤에 기어 나가!" 생사를 넘나드는 공포를 겪은 직후라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그날 혼쭐이 난 충격은 단순히 엉덩이의 아픔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내 내면에 깊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기묘하게도, 그날 이후 나는 수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학교에서 단체로 수영장에 가거나 바닷가로 피서를 가도, 가슴 깊이 물이 차오르면 그날 중랑천의 누런 흙탕물이 시야를 가득 채우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물은 나에게 더 이상 놀이터가 아니라, 언제든 나를 집어삼킬 수 있는 거대한 포식자로 각인되어 버렸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도, 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이면 문득문득 그때의 흙탕물 냄새와 버드나무 가지의 거친 감촉이 손끝에 살아나는 듯하다. 수영을 못 한다는 것은 삶의 작은 결핍이기도 했지만, 거꾸로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어린 시절의 무서운 교훈이기도 했다. 중랑천은 내게 철없던 시절의 용기와, 그보다 훨씬 컸던 생의 두려움을 동시에 선물한 고향의 뒷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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