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정종 큰병의 기세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1970년대의 캠퍼스는 열정과 광기, 그리고 날것 그대로의 청춘이 뒤섞인 거대한 용광로였다. 선배들의 서슬 퍼런 눈빛과 막걸리 통이 지배하던 그 시절의 신입생 환영회는 환영이라는 따뜻한 단어보다는 '사자 우리에 던져진 새끼 사자'의 운명에 가까웠다.
막걸리라는 술은 그 자체로 해방구이자 거대한 압박이었다. 제대로 된 유리잔이나 사발이 귀하던 시절, 우리는 정종을 담아내던 커다란 갈색 유리병에 하얗고 걸쭉한 막걸리를 가득 채워 마시곤 했다. 선배들이 내미는 그 거대한 병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명령이었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학생도 예외는 없다!" 칼칼한 목소리로 외치던 선배의 호통과 함께 사발은 바닥을 드러내야 했고, 숨도 쉬지 않고 들이키던 그 첫잔의 텁텁함은 70년대 청춘의 첫맛이었다.
본론 (1): 김치찌개 하나와 흰말의 신화, 죽기살기의 밤
그날 이후로 나는 막걸리와 지독한 연을 맺었다. 보통 말로 치면 한 말씩, 친구들과 어우러져 마셔댔다. 안주라고 해봐야 시큼하게 익은 김치 한 토막이 둥둥 떠다니는 허름한 김치찌개 하나가 전부였다. 버스 종점 근처의 허름한 선술집, 연탄불이 희미하게 타오르던 그곳에서 우리는 안주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삶의 허기가 너무 커서 술을 마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발을 부딪치며 노래를 불렀고,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죽기살기로 마셨다. 배는 부른데 속은 허전하고, 머리는 띵한데 가슴속엔 무엇인지 모를 뜨거운 불꽃이 울렁거리던 밤들이었다. 가난했기에 더 독하게 마셨고, 외로웠기에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 시절의 찬 바람을 견뎌냈다.
본론 (2): 세월의 저편에서 돌아보는 생명의 궤적
인생의 고비들을 넘어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해진 지금,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함께 엉켜 울고 웃으며 막걸리 사발을 비우던 수많은 동기들과 친구들. 그 치열했던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음인지, 아니면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았음인지 친구들은 간암이다, 폐암이다, 담도암이다 하며 큰병을 앓고 고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병원 침대 위에서 야윈 모습을 보일 때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곤 한다. 그런데 참 신기한 노릇이다. 그렇게 독하게 마셔대고, 몸을 아끼지 않았던 나는 어쩐 일인지 아직도 이렇다 할 큰병 없이 꼲꼲하게 버텨내고 있으니 말이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가 소주나 위스키 같은 독한 양주 대신, 오직 구수한 막걸리와 깊은 향의 꼬냑만을 고집해 마셔서 그런 것일까?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은 없지만, 그 투박하고 정직한 발효주의 생명력이 내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세월의 독을 이겨내게 한 작은 방패가 되었나 보다 하고 혼자만의 미소를 지어보곤 한다.
결론: 사발에 담긴 세월은 마르지 않는다
오늘 밤도 어김없이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서늘해지면, 70년대의 그 허름한 주막과 정종 큰병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탁한 막걸리 빛깔 아래 비치던 젊은 날의 눈빛들, 그리고 서럽도록 가난했지만 그만큼 순수했던 고대의 푸른 환영회 날들.
친구가 아프고 내가 살아남은 이 불균형한 세월의 저울 위에서, 나는 오늘도 기억 속의 막걸리 한 사발을 조용히 들어 올린다. 거칠었던 손등의 주름만큼이나 깊어진 세월의 무게를 담아,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그 아득하고 찬란했던 청춘의 바닥을 향해 마음속 건배를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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