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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3일 월요일

[삼십 년 만에 만난 초딩 불알친구]

 

초인종 울림 소리가 이토록 가슴을 두드린 적이 있었던가.

인터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삼십 년의 세월을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야, 나다. 문 좀 열어봐." 쉰 목소리 섞인 그 톤, 문장을 끝맺지 않고 흐리던 그 버릇까지, 마당에 비쳐든 그림자만 보고도 나는 그가 누구인지 직감했다. 현관문을 벌컥 열자, 세월이라는 두터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조금은 하얗게 센 머리와 깊어진 눈가의 주름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민수였다. 코 흘리개 시절, 골목길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쳐가며 딱지를 치고, 방과 후엔 뉘엿뉘엿 지는 노을을 뒤로한 채 엄마가 부르짖던 저녁밥 소리에 허겁지겁 뛰어 헤어지던 내 불알친구.

"여기가... 진짜 너네 동네 맞냐?"

민수가 들고 온 캐리어 바퀴가 우리 집 현관 앞 보도블록을 스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우리는 홀린 듯 서로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이내 어색한 웃음 대신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세월은 우리를 중년의 언저리에 확실하게 갖다 놓았지만, 마주한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코를 훌쩍이던 열두 살 소년이 살아 있었다. 민수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홀연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었다. 그 시절의 이민은 지금처럼 비행기 표 끊기가 수월하던 때도 아니었고, 연락이 닿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렵던 시절이었다. 편지 몇 통이 오가다 이내 끊겼고, 그는 내 기억의 서랍 한켠,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묻혀 있었다.

그런데 그가 삼십여 년 만에 태평양을 건너 돌아왔다. 그것도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아예 둥지를 틀기 위해서다. 최근 대한민국 정부가 특정 요건 하에 복수국적(이중국적)을 허용하면서,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던 민수도 우여곡절 끝에 한국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았다고 했다.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준 새 주민등록증 속 사진은 낯설었지만, 그 고유의 번호와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는 그가 다시 우리의 영토로 완전히 귀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 같았다.

"미국 생활은 어땠냐. 얼바인에서 스시집 크게 했다며."

동네 조용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앞에 뒀다. 민수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햇살 아래서 젊은 날을 다 바쳐 일했다고 했다. 한국 식자재를 구하기 어렵던 초기부터 시작해 맨땅에 헤딩하듯 매장을 일구었고, 다행히 현지 입맛과 정통 일식의 조화를 이뤄내며 스시 전문점으로 꽤나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자식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체력도 부치고 여유도 생겨 과감히 은퇴를 선언했다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문득 고향 냄새가 너무 그리운 거야. 어머니는 아직 한국에 계시고 싶어 하시고. 그래서 겸사겸사 돌아왔지."

민수는 어머니가 살던 오래된 주택을 완전히 부수고 새로 지다시피 리모델링을 했다고 했다. 마당에 작은 나무를 심고, 거실 창을 크게 내어 햇살이 잘 드는 집. 어머니를 모시고 그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참이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우리는 서로의 집 위치를 확인하고는 멍해졌다. 민수가 리모델링했다는 어머니 댁은, 놀랍게도 내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지나치고 주말마다 조깅을 하며 지나치던 바로 그 골목, 내 집에서 도보로 채 오 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삼십 년 동안 지구 반 바퀴를 돌며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를 소비하고, 각자의 사투리로 삶의 무게를 견뎌낸 두 사람이, 결국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다시 어린 시절의 그 동네, 그것도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다시 모이게 된 것이다. 이건 우연이라기보다 거대한 운명의 장난 같기도 하고, 혹은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다정한 포옹 같기도 했다.

인생의 전반부는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리는 시기였다. 나는 이 고향을 떠나지 못해 맴돌았고, 민수는 너무 멀리 나아가 세상을 경험했다. 각자의 트랙은 너무나 달랐다. 나는 매일의 소소한 직장 일과 가정을 지키는 일에 안도했고, 민수는 이국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친 파도를 넘었다. 하지만 쉰을 넘긴 지금, 그 거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항구가 우연히도 서로의 옆이라니.

그날 이후 우리의 일상은 은근하게 겹쳐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서면, 어김없이 편의점 앞이나 산책로 초입에서 민수와 마주치곤 했다. "야, 오늘 국밥이나 한 그릇 때리러 가자."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간이 맞았고, 오랜 세월의 공백은 그저 아침 안개가 걷히듯 부드럽게 사라졌다.

민수의 아내는 사교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적응하느라 신경이 예민해질 법도 한데, 우리 집사람과도 벌써 김치 담그는 법을 공유하고 동네 마트 할인 정보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주말 저녁이면 민네 새 집 마당에 가벼운 의자를 놓고 앉아, 타지에서 가져온 와인 한 병을 따거나 집 앞 수퍼에서 산 소주를 마시며 밤 깊은 줄 모른다.

아이들 성적 이야기, 늙어가는 부모님의 건강 이야기,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시들어가는 우리 자신의 관절 이야기까지. 주제는 젊은 날의 무모했던 꿈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 대화를 나누는 마음만큼은 열두 살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가볍고 유쾌했다.

인생의 후반전이라는 말이 주는 왠지 모를 쓸쓸함과 황혼의 기운이, 이 불알친구 부부와의 재회로 인해 완전히 다른 빛깔로 칠해지고 있다. 저녁 노을이 질 때쯤,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 나란히 걸어오는 민수의 걸음걸이를 본다. 굽어진 어깨가 닮아 있고,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눈빛이 닮아 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자리에 서로가 있어 준다는 것. 삼십 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오늘 우리의 커피 향은 진하고, 인생의 남은 날들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마냥 즐겁고, 또 다행이다. 이 나이에 이런 친구 부부를 다시 만나다니, 내 남은 인생은 참으로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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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놓치고 후회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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