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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3일 월요일

[얼바인에서 온 초대: 달빛 아래 펼쳐진 서사의 만찬]



초여름의 밤공기는 은근한 달빛을 품고 골목길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대문 안을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간질이는 것은 갓 지은 밥의 고슬고슬한 온기와, 바다를 통째로 품은 듯 싱그러운 생선의 훈김이었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실내의 번잡한 식탁이 아니라, 민수가 직접 가꾸고 다듬은 새 집의 아늑한 마당이었다. 은은한 전구빛이 나무 가지마다 맺혀 별빛처럼 반짝였고, 그 아래 길게 놓인 원목 테이블 위에는 이미 입이 벌어질 만큼 화려한 요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 앉아라. 한국에 와서 제대로 칼질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민수가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접시를 날라왔다. 캘리포니아 얼바인$(\text{Irvine})$에서 수십 년간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그 손끝의 정교함이 고스란히 담긴 스시 요리들이었다. 듣던 바와 과연 다르지 않았다. 투명할 정도로 붉은 빛을 내뿜는 참치 아카미, 입안에서 눈 녹듯 사라지는 연어의 부드러움, 그리고 불향을 은은하게 입힌 관자 구이와 성게알$(\text{uni})$이 아낌없이 올라간 군함말이까지. 비주얼부터가 하나의 예술품을 방불케 했다.

젓가락을 들어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는 감칠맛과 함께 밥알의 적당한 온도가 혀끝을 감쌌다.

"와... 민수야, 이거 진짜 미쳤다. 대박이다, 진짜."

옆에서 외이프$(\text{아내})$도 감탄사를 터뜨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트에서 파는 초밥과는 차원이 다른, 장인의 내공이 깃든 맛이었다. 미국에서 거대하게 성공을 거두고 은퇴한 친구의 솜씨를 이렇게 집 앞마당에서 누려본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우리는 본격적인 만찬에 빠져들었다.

요리가 다양하게 이어지는 동안, 마당을 채운 건 음식의 향기만이 아니었다. 삼십여 년이라는 긴 세월의 공백이 무색하게, 우리의 대화는 끊길 줄 몰랐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스시집을 일구며 겪었던 고생담부터, 자식들을 키워낸 이야기, 그리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품을 닮은 이 집에 정착하기까지의 여정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졌다.

그러다 민수가 문득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은근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너희들 기억나냐? 내가 옛날에 신혼 때 한국 잠깐 들어왔을 때 말이야. 수유리 너네 집에 찾아가서 거실 구석에서 자고 갔던 거."

나와 아내는 동시에 숟가락을 멈추었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멍한 눈빛이 교차했다. 수유리. 결혼 초기에 겨우 살림을 차렸던 그 시절. 하지만 민수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갔다는 그 기억은, 놀랍게도 우리 두 사람의 머릿속에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수유리? 우리집에서 잤다고? 언제?"

"기억 안 나지? 그럴 줄 알았다. 그때 너네 집 앞에는 작은 냇가 같은 게 있었어. 거기서 우리가 쪼그려 앉아서 맨손으로 고기 잡겠다고 낄낄거렸던 거. 너네 와이프가 부끄러워하면서 김치볶음밥 해줬던 것도 기억 안 나냐?"

아내는 손사래를 치며 머리를 쥐어짰다. "야, 민수야! 우리가 정말 거기서 잤다고요? 아니, 난 왜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 세뇌당하는 기분인데?"

우리는 박장을 대소했다. 세월이라는 녀석은 참으로 짓궂어서, 어떤 기억은 훈장처럼 선명하게 남겨두고 어떤 소중한 순간들은 모래성처럼 스르륵 무너뜨려 버린다. 민수에게는 인생의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만난 유일한 고향의 온기였기에 그토록 선명하게 각인되었을 터였다. 반면 매일의 고단한 생활을 버텨내느라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우리 부부에게는, 그 시절의 수많은 손님 중 하나로 스쳐 지나갔거나 혹은 삶의 무게에 눌려 지워진 풍경이었으리라.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진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민수가 들려주는 그 냇가 이야기, 고기 잡겠다고 흙탕물을 뒤집어쓰던 열두 살의 잔상과 스물여덟 살의 어설픈 신혼살림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마당의 공기는 더욱 진한 온기로 채워졌다.

"기억하든 말든 상관없지 뭐.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나서 이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있잖아."

민수의 아내가 빙그레 웃으며 와인잔을 채워주었다. 밤은 깊어가고, 마당을 밝힌 전구빛은 더욱 아늑해졌다. 인생의 전반부가 각자의 사투와 망각으로 얼룩져 있었다면, 인생의 후반부는 이토록 풍성한 요리와 따뜻한 수다로 채워지고 있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전혀 다른 삶을 살다 온 친구가, 알고 보니 도보 5분 거리에 살며 우리의 저녁을 초대했다는 사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수유리의 냇가와 고기잡이 추억을 소환해 준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우연을 넘어 삶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다정한 보너스 같았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마당의 밤바람을 느낀다.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찾으면 또 어떠하랴. 지금 우리의 눈앞에 반짝이는 이 순간이 진실이고, 앞으로 함께 쌓아갈 수많은 저녁이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인생의 후반전, 참으로 근사하고 맛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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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놓치고 후회하기 전에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아, 그때 조금 더 용기를 낼 걸 그랬어" 하는 짙은 아쉬움 말입니다.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며, 기회는 결코 우리의 사정을 봐가며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이미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