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문화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던 그 시절, 우리에게 허락된 가장 찬란하고 소중한 해방구는 바로 덕수궁 돌담길이었습니다. 스마트폰도, 화려한 프랜차이즈 카페도 없었지만, 돌담길을 따라 걷는 그 시간만큼은 세상 누구도 부러울 것 없는 청춘의 한 페이지였습니다.
1. 놀이문화가 빈약했던 시대, 돌담길이 품은 온기
지금의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우리가 학창 시절을 보낼 당시에는 여가나 데이트를 즐길 만한 마땅한 공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주말이면 영화관이나 대형 복합문화공간을 찾는 요즘과 달리, 그 시절 학생들에게 데이트란 '걷는 것' 그 자체였습니다.
입시 지옥과 빡빡한 학업 스트레스 속에서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던 공간. 대한문 앞을 지나 정동극장으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돌담길은 그 자체로 거대한 야외 데이트 코스이자 만남의 광장이었습니다. 손끝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가슴이 콩닥거리던 풋풋한 시절,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나누었던 소소한 대화들은 오늘날까지도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적시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 덕수궁은 덤,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간
'덕수궁 돌담길'이라는 이름과 달리, 사실 그 시절 우리에게 덕수궁 내부 관람은 그리 중요한 메인이 아니었습니다. 덕수궁은 그저 돌담길을 거닐기 위해 찾아가는 핑곗거리이자 아름다운 배경일 뿐이었습니다. 입장료 몇 푼을 아끼거나 혹은 미술관이나 궁궐 안보다는 돌담을 따라 걸으며 나누는 이야기와 분위기에 더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날이면 돌담길은 온통 황금빛 카펫으로 변모했습니다. 바삭거리며 밟히는 낙엽 소리를 장단 삼아 걷다 보면, 시청 광장의 소란스러움은 멀어지고 고요하고 아늑한 우리만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동교회를 지나 시립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피어오르던 낭만은 어떤 고급 레스토랑의 저녁 식사보다 값진 것이었습니다.
3. 영원할 것 같던 청춘의 한 컷, 지금도 그 자리에
세월이 흘러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우리의 삶도 바쁘게 변모했습니다.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면 세계 어디든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고, 전 세계의 문화 콘텐츠를 안방에서 즐기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문득, 모든 것이 아날로그적이고 서툴렀던 그때 그 시절의 공기가 그리워집니다. 빌딩 숲 사이에 여전히 의지처럼 남아 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걷노라면, 비록 시간은 흘러 예전의 그 풋풋한 학생은 아니지만, 돌담길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 속에서 잃어버린 마음의 여유와 순수를 다시금 발견하곤 합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걷던 그 길. 화려하지 않아 더욱 아름다웠고, 가졌던 것보다 나누었던 마음이 더 많았던 우리의 학창 시절은 지금도 덕수궁 돌담길의 고즈넉한 돌멩이 하나하나에 다정하게 스며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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