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성인인데, 끊어내야 할까요? 아니면 품어야 할까요?"
고3이라는 중요한 시기, 비행과 가출을 거쳐 청소년 보호시설까지 경험하고 온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거기에 충동조절장애와 우울증이라는 진단까지 더해졌을 때, 부모가 느끼는 절망감과 배신감, 그리고 무기력함은 극에 달합니다.
"성인이 되면 한 명의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고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가, 아니면 아픈 환자로서 끝까지 짊어지고 보듬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자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모 역시 사람으로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기에 나오는 간절한 비명일 것입니다.
탈선과 비행, 그 너머의 숨겨진 신호
겉으로 드러나는 비행과 가출은 사회적 기준에서 분명한 '탈선'입니다. 하지만 심리적 고통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아이가 세상과 자기 자신을 향해 뻗치는 ‘마지막 생존 자구책’이었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통제되지 않는 충동과 마음속 깊은 우울감을 견디다 못해 밖으로 튕겨 나가는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만약 그 비행의 길마저 막혔다면, 아이는 삶 자체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렇게 살 바엔 차라리…"라는 원망의 마음 대신, "저렇게라도 버텨서 살아있어 주어 고맙다"는 마음으로 시선을 살짝 바꾸는 것, 그것이 치유의 첫걸음입니다.
청소년 보호시설을 다녀왔다는 사실 역시 절망의 낙인이 아닙니다. 그곳은 벌을 받는 감옥이 아니라, 거친 길거리의 위험(술, 마약, 범죄 등)으로부터 아이를 일시적으로 차단하고 목숨을 건져낸 ‘안전지대’였습니다.
절연도, 맹목적인 희생도 아닌 ‘지혜로운 품음’
자녀가 성인이 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마음의 병이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모의 모든 삶을 희생하며 아이의 모든 요구를 받아주는 것 또한 답이 아닙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절연’이 아닌 ‘건강한 경계 설정’입니다.
품어주되, 휘둘리지 않는 태도
성인이 된 아이가 혼자 서보겠다고 나간다면 억지로 잡지 말고 보내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힘겨워 돌아온다면 아픈 자식으로 담담히 맞아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한계를 인정하기
부모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감당하고, 부모의 능력을 넘어서는 무리한 요구는 담담하고 명확하게 거절해도 됩니다. 그것은 방치가 아니라 부모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선입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농부의 마음
태풍이나 폭우가 쓸고 지나가 농사를 망쳤다고 해서 농부는 땅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다시 씨앗을 심을 뿐입니다. 자녀의 방황과 재발이 반복되더라도 한탄하거나 좌절하기보다 "또 과정이구나" 하고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내 마음이 편안해져야 아이도 쉴 수 있습니다
아이를 환자로만 바라보면 부모의 삶은 평생 중증 환자 보호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치는 것은 부모 자신의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죄책감의 흉터를 남깁니다.
절연을 고민할 만큼 지친 자신을 먼저 다독여주세요. "내가 부모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녀의 인생과 내 인생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부모의 마음이 먼저 안정되고 편안해질 때, 그 따뜻하고 든든한 기운이 방황하는 자녀를 비로소 안착하게 만드는 유일한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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