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헐벗은 계곡과 청춘의 촛불
1970년대의 서울은 거대한 열정과 깊은 결핍이 기묘하게 공존하던 시대였다. 시골에서 상경해 대학 문턱을 밟았으나, 주머니 속은 늘 텅 비어 있었고 앞날은 안개처럼 자욱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혹은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뛰어다녀야 했던 청춘들이 허다했다.
식모살이를 하거나, 새벽녘 찬 바람을 맞으며 신문을 돌리고, 번화가 구석에서 구두솔을 놀리며 하루를 버텨내던 아이들. 가난이라는 단단한 껍질에 갇혀 배움의 기회조차 빼앗긴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었다.
수유리 4.19탑 뒤편, 울창한 나무들과 맑은 물줄기가 흐르던 계곡 어딘가에 우리는 초라하지만 가장 뜨거운 배움터, '야학(夜學)'의 막을 올렸다. 뎅그렁 울리는 종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가 가득했던 그 계곡의 밤마당에서, 우리의 푸른 청춘도 함께 익어갔다.
2. 본론 (1): 가난의 무게를 나누던 아이들과 또 다른 청춘들
신문 배달통을 내려놓고 칠판 앞에 서다
낮에는 구두약을 묻힌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밤이면 어설픈 칠판 앞에 서서 분필을 잡았다. 야학에 찾아온 아이들은 낮에는 공장에서, 식당에서, 혹은 어느 집의 셋방살이 허드렛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그들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보다 빛났다. "선생님, 이 영어 단어는 어떻게 읽습니까?" 하고 묻는 목소리에는 삶의 애환과 향학열이 동시에 묻어났다.
나는 주로 영어를 맡아 가르쳤다. 알파벳을 간신히 떼던 아이들이 문장을 읽어 내려갈 때 느끼던 전율은, 내게 어떤 대학 강의나 학위보다 값진 보람이었다.
계곡의 밤바람 속에서 피어난 동료애
그 길을 홀로 걷지 않았다. 나와 뜻을 같이하던 동기들, 그리고 우리 또래의 여대생들이 함께 했다. 그 시절 앳된 얼굴의 여선생님들은 비록 자기 자신도 월세방의 고단함을 견디고 있었지만, 아이들을 향한 미소만큼은 늘 따뜻하고 눈부셨다.
등잔불 밑에서 교재를 연구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요를 가르치며 나누었던 커피 한 잔의 온기. 가진 것은 없었으나 서로의 체온으로 세기의 추위를 막아내던 그 시간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3. 본론 (2): 국경을 넘어 선교와 사랑으로 이어진 인연
제자와의 결혼, 그리고 삶의 증명
야학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도정(道程) 속에서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났다. 함께 고생하던 내 친구 하나는 야학에서 영어를 배우러 오던 성실한 여학생과 눈이 맞았고, 집안의 반대와 가난의 장벽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어떻게 선생과 제자가 그러느냐", "먹고살기도 팍팍한데 무슨 결혼이냐"며 걱정 섞인 눈총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보여준 진심과 치열한 삶의 태도는 모든 우려를 감동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가난을 핑계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서로를 붙들어주며 단단한 가정의 기둥을 세웠다. 야학의 칠판 앞에서 시작된 인연이 한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로 결실을 맺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위안이자 희망의 증거였다.
4. 결론: 4.19탑 계곡의 물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수유리 계곡의 풍경도 많이 변했고, 거칠었던 우리의 손에도 주름이 깊게 패였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돌려 그 시절을 회상하면, 4.19탑 뒤편으로 흐르던 계곡 물소리와 함께 어설픈 영어 발음을 따라 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배우지 못해 서럽고 가난해 아팠던 그 시절, 우리는 서로에게 빛이 되어 주었다. 무언가를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 순수한 열정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훈장이 되었다. 오늘 밤, 오랜 세월을 건너온 기억의 창고를 열어 그때 그 시절 분필 냄새 가득했던 계곡의 밤바람을 깊이 들이마셔 본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