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면 그에 걸맞은 '인격의 성숙'이 뒤따를 것이라 기대합니다. 긴 세월을 살아내며 얻은 지혜와 관록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여유로 드러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가 거리와 일상에서 마주하는 일부 노인들의 모습은 이러한 기대를 무참히 깨뜨리곤 합니다. 특히 소위 '아스팔트 태극기'라 불리는 극우 성향의 노년층이 보여주는 거친 언행과 무분별한 집단 행동은, 같은 노년 세대에게조차 깊은 수치심과 걱정을 안겨줍니다.
전철은 그 갈등의 최전선입니다.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울려 퍼지는 이들의 목소리는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선동이나 비난에 가깝습니다. 젊은 세대를 향해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놈, 저놈" 하며 함부로 욕설을 내뱉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체면을 중시하고 점잖음을 미덕으로 여기던 과거의 노인상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자신의 신념만이 절대적이라는 독단과 타인을 향한 날 선 적대감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이 현상을 단순히 개인의 인격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그 원인이 너무나 복합적이고 뿌리 깊습니다.
첫째, 급격한 시대 변화 속에서 겪는 '존재감의 상실'입니다. 국가 재건의 주역이라 자부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이들이,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고 가치관이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회의 중심이 아니라는 상실감, 그리고 자신이 쌓아온 경험이 부정당한다는 위기감이 그들을 더욱 극단적인 정치적 결집으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둘째, '소통의 부재'와 '확증 편향'의 늪입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정보 환경이 파편화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필터 버블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반대 의견을 들을 기회는 차단되고, 극단적인 주장에 동조하며 그들만의 '정의'를 구축합니다. 이 과정에서 현실 감각은 마비되고, 타인을 설득하기보다는 압도하려는 공격적인 태도만이 강화된 것입니다.
셋째, 노년기에 가져야 할 성찰의 결여입니다. 나이가 들면 고정관념이 견고해지고,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과거의 영광에만 매몰될 때, 인간은 비로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여'가기 시작합니다. 진정한 어른이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다름을 포용하고 우리 사회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혐오와 분노로 소중한 하루하루를 채우기에는 시간의 무게가 너무나 아깝습니다. 거친 욕설과 고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할수록, 정작 그들이 얻는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고립과 외면뿐입니다.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 분노를 내려놓고, 그 에너지를 나 자신을 돌보는 일과 주변을 보듬는 일에 써야 할 때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타인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일이어야 합니다.
나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은 노년을 보내기 위해, 오늘도 마음의 틈을 넓혀봅니다. 비워냄으로써 더 깊어지고, 낮아짐으로써 더 넓어지는 삶. 혐오의 아스팔트 위가 아닌, 배려와 여백이 있는 곳에서 노년의 진정한 품격이 피어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낡은 이념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존엄과 젊은 세대와의 공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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