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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5일 수요일

[인생 후반전] 55년 만의 초등학교 동창회: 촌놈들의 순수한 만남과 뭉클한 재회

 


인생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요? 오랜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있는 요즘, 제겐 잊지 못할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무려 55년 만에 참석하게 된 초등학교 동창회입니다.

처음에는 갈까 말까 망설였고, 낯선 얼굴들 사이에 섞이는 것이 내키지 않아 참석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발걸음을 옮겨 마주한 그 자리에서, 저는 잊고 살았던 시간의 보물상자를 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55년 만의 만남이 안겨준 진한 감동과, 어려웠던 시절을 딛고 각자의 자리에서 멋지게 살아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1. 지방의 조그만 학교, 그리고 서울 전학생의 기억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참으로 고단하면서도 정이 넘치는 때였습니다. 지방의 아주 조그만 시골 학교였기에 당시만 해도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조차 꿈꾸지 못한 친구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저는 그 시절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5학년 때 우연히 이 작은 시골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 흙냄새 가득한 운동장, 그리고 풋풋한 시골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보낸 시간들은 제 어린 시절의 깊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특히 제 외가집은 동네에서 큰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어린 나이에 원두막에 앉아 여름철 내내 포도, 배, 복숭아 등 온갖 과일을 원없이 따 먹으며 배를 채우곤 했습니다. 붉게 익은 복숭아 한 입 베어 물며 원두막 아래로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 그 시절의 초록빛 풍경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살아나는 아련한 영화 한 장면 같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그렇게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는 기나긴 이별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2. 55년 만의 재회: "이놈 저놈" 반말 속에 피어난 천진난만함

세월이 흘러 해외에서 오랜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고향으로 완전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권유로 반신반의하며 나간 초등학교 동창회. 처음 장소에 들어섰을 때는 55년이라는 세월의 공백 때문인지 낯설기만 했고, 솔직히 '여기에 와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색함은 채 5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얼굴에 깊어진 주름과 하얗게 센 머리칼을 발견하는 순간, 마법처럼 그 시절의 얼굴들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야, 이 자식아! 이게 얼마 만이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알아보곤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이놈 저놈' 하며 격없는 반말을 툭툭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관계라면 조심스러웠을 텐데, 어린 시절 코 훌리며 같이 놀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아무런 계산도, 가식도 없었습니다. 서울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시골 촌놈들의 순수한 만남 그 자체였습니다.


3.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그리고 눈부신 성공의 서사

자리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면서도 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모두가 참으로 어렵고 배고프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돈이 단돈 1원도 없어서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못 내고,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가 시장 바닥에서 전선공으로 악착같이 일판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남들이 비웃을 만큼 거칠고 힘든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해 피땀 흘려 일한 결과, 지금은 지역에서 누구나 알 만한 큰 기업을 일궈낸 멋진 CEO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시절을 버텨낸 다른 친구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삶을 가꿔 저마다 번듯하게 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해 세파를 견뎌낸 이들의 손마디와 눈빛에는 삶의 연륜과 깊은 존경심을 자아내는 훈장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4. 인생 후반전, 뜻밖에 만난 보석 같은 친구들

해외에서의 긴 방황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뿌리내리려 할 때, 제겐 이 55년 만의 동창회가 뜻밖의 가장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화려한 도심의 인맥이나 계산적인 관계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뿌리 깊은 고향의 정취와 순수한 친구들의 온기.

"우리 이제 남은 인생, 건강하게 자주 얼굴 보며 살자."

헤어지며 나눈 그 짧은 한마디가 어찌나 큰 위로가 되던지요. 인생의 후반전이라는 길목에서 뜻밖에도 이런 보석 같은 고향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제 남은 삶에 가장 큰 축복이자 즐거움입니다. 풋풋한 원두막의 향억이 감도는 과수원의 기억부터, 거친 세상을 멋지게 헤쳐나온 백발의 촌놈들이 나누는 따뜻한 소주 한 잔까지.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가을날이 지금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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